ⅴ. 통일의 과제와 전망 - 3. 통일 이후의 전망 색인

통일 조국의 미래상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모습은 현재 남한과 북한이 주장하는 통일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통일 국가는 좀더 원대한 이상과 가치를 내걸고, 한민족 모두의 꿈을 현실화시켜 줄 수 있는 효율적인 국가 체제여야 한다. 남한과 북한 체제의 산술적 평균으로서의 절충적 체제여서는 안 된다.
통일 국가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 모두의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고, 그러한 상상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킬 구체적 제도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꿈만 요란하게 꾸고 실천이 없으면, 아예 꿈을 안 꾼 편이 더 안전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 민족이 지향하고 있는 통일 국가의 비젼과 이상, 그리고 그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 내용들이 많은 논문 속에 집약되어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지향해야 할 가치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통일 국가는 자유, 민주, 인권, 복지, 행복 등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데 그 방향을 두고, 이것의 실현에 도움이 되도록 그 국가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정치 제도 발달사의 관점에서 자유와 민주를 최고 이념으로 삼는 근대적 민족 국가가 곧 통일 국가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지금 현재 계속 논의되고 있고, 세련화 되어 가고 있다.
통일 국가를 그려 내는 데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모습을 함께 그려가는 것이다. 민족 구성원이 모두 국가의 명실상부한 주인이어야 한다는 현대의 보편적 국가관이 옳다고 한다면, 통일 국가를 설계하는 이 시점에서부터 국민들은 함께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상식적 믿음 속에 통일 국가의 이상적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즉, "국민, 그리고 민족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 보이며, 통제 경제가 아닌 자유 시장 경제라 보여진다. 결국 자유 민주주의가 통일 국가의 이상적 모습을 형성하는 핵심적 원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닫기>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주의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족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본원의 심성(心性)은 자기 민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과 귀착 의식이다. 그 점에서 우리 민족은 유독 강인하다. 그 심성을 유도하고 개발하여 통일을 성취하는 것만이 개인의 보람이고 민족의 자랑이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주의는 세계사에서 민족주의 일반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가치 실현에서 그 궤도(軌道)를 함께 해야 함은 물론이다. 민족주의가 지향하는 통일 자주 국가의 실현과 경제적인 자립 및 발전을 위한 기본 이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때 말하는 자주는 곧 이상이고, 높은 도덕적 가치이다. 자주란 독립을 위한 기본 정신이고, 그것은 민족의 정통성 확립과 그 계승을 뜻한다. 훌륭한 국가나 민족이란 물질적 풍요나 경제력, 군사력에서의 자립성을 갖추는 데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선행하는 것이 바로 자주 정신이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란 국토의 통일은 물론 국가의 통일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있어서의 민족 공동체 실체의 일체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 자의식이나 인격이 통일되지 못하고 내부적인 자기 분열을 일으키게 될 때 그를 완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과 국가에 있어서도 그 이치가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주의는 확실히 침략적이거나 영토 확장과 같은 수단으로 내세우는 이념과 사상과는 다르다. 우리의 민족주의 지표(指標)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에 입각하여 근대적인 통일된 민족 국가를 실현시켜 민족사(民族史)의 정통을 지키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의 의미를 갖고 그 질을 높이자는 데 있다. 우리는 매우 평화 애호적인 민족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평화적인 통일은 우리의 가치 실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 평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독일과 일본이 다같이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패전에도 불구하고 반 세기 만에 그들은 경제적인 최강대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그 같은 저력의 정신적 밑받침은 어디에 있을까? 거기에는 그들 전래의 민족, 민족 의식, 민족 문화, 민족 정신에 바탕을 둔 민족주의가 원리적(原理的)이고 기반적(基盤的)으로 기능했다. 한 예로 일본이 경제 발전을 통한 성장과 번영을 하게 된 저력은 강인한 민족 의식이라고 한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일본의 경제 발전의 저력의 바탕을 '집단주의'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혹자들은 '일본 민족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지금 세계는 다시 그들의 집단주의 또는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를 서서히 높여가고 있다.
우리는 남북한의 제도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가려 자주적으로 취사 선택하되 그 근간을 민족주의로 삼아 통일된 민족 국가 형성에서 가치와 이상을 살려 가는 것을 이념적 기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통일에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고, 통일을 위한 민족적인 에너지를 자발적으로 동원하는 기폭제가 되기에도 충분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민족주의는 중심이자 본질이고 핵이며, 바로 체(體)라고 할 수 있다.[반면에 민주주의를 용(用)이라고 할 수 있다.] <닫기>

열린 민족주의

통일 한국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세계 사회의 보편성이 감소하고 민족 사회의 특수성이 증가하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세계사의 보편성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인류 평화와 복지 향상에 기여하는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즉 열린 민족주의여야 한다. 다시 말해 통일 한국에서의 열린 민족주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창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족 국가 간의 갈등을 창조적으로 소화.극복하고 민족 국가 간의 이해 관계를 국제주의적 시각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신국제 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닫기>

태평양 공동체의 '문화 중심 국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쏟아지는 외래 문화의 홍수 때문에 한국 문화의 독특한 주체성을 상실하고 주변 문화로 전락함으로써 종속화한 상태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두되고 있다. 확실히 외래 문화의 영향은 나날이 커져 가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는 주위에서 쉽게 발견된다.
한국의 민족 문화란 물론 이 땅에서 자생된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상호 연관성을 갖는 것이어서 세계의 어느 문화라도 다른 문화와의 접촉과 영향에서 벗어난 것은 없다. 문제는 외래 문화를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의 확립과 용해 능력을 확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적인 것이 비국제적이거나 비세계적인 것이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국제화의 목표는 외국의 것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에 우선하여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의 문화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는데 둘 필요가 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문화 대국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김구 선생이 제시한 국가 발전의 목표는 우리가 매우 심각하게 음미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의 국토, 자원, 인구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초강대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영역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고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닫기>

국제적인 '경제 중심 국가'

사회가 다양해지고 개인의 자유가 증대될수록 동시에 새로운 협력 관계 또는 공생 관계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미래 기업의 경쟁력은 구성원들의 참여와 협조 정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기업 조직이든 사회든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조 없이는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세대가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통하여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도 분배 및 사회 복지 분야에 관심을 쏟는 새로운 차원의 발전 전략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적 경제 제도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문화적 토양과 현실에 적합한 경제 제도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시장 경제에 바탕을 두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민주적인 합의 형성과 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공동체의 이익과 복지를 증진시킴으로써 경제 활동의 동기를 유발하고, 시장 경제 주체인 민간 부문의 자율적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공공 이익을 위해서는 공공 부문이 시장 기능을 보완하도록 하는 공동체적 시장 경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경제 질서하에서는 경제적 자유의 실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사회 안정 및 공정성과 상치될 경우에는 민주적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 권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항상 법률과 제도에 의거하도록 함으로써 자의적 개입의 여지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시장 경제의 기본 틀을 유지한다는 것과 공동체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일견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또한 공동체의 이익 추구가 국제화 추세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공동체에 대한 참여 의식 없이는 개인이나 기업의 창의적 노력이 극대화될 수 없으며 효율성의 추구나 경쟁력 강화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상충되는 개념들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감과 귀속 의식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사회 질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적 시장 경제 운영의 기본 목표는 인간 가치의 구현에 있다. 개인의 인간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장치는 시장 기구이다. 시장 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민주적 정부가 균등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 경쟁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닫기>

미래 사회 한국인상

세계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국가상은 문화 대국, 도덕 국가 및 환경 대국과 같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산업 사회의 국가상인 '부국 강병'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치와 품격을 중시하는 '부민 안국(富民安國)'을 새로운 기본 가치로 삼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국가는 정치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복지 시장 경제, 사회적으로 사회 협약 또는 사회 계약과 법치주의 그리고 문화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공생주의를 지향함을 말한다. 국가의 미래상은 경제나 군사와 같은 물질의 척도가 아니라 문화, 도덕 및 환경과 같은 비물질적 인간적인 척도가 중시되고, 인간 중심의 정치, 경제, 사회 및 문화가 실현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첫째, 문화 대국을 지향하는 것은 정보 사회의 발전 동력이 지식과 정보와 같은 인간의 창조력이 중가되기 때문이다. 이 때 문화는 발전 전략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품격을 높여줌으로 인간 삶의 질적 가치를 향상시키는 수단이기 때문에 더욱 중시된다. 한국 문화의 창의성이 존중되는 한편, 문화의 세계화가 세계 속의 한국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새로운 질서가 존중된다.

둘째, 도덕 국가를 지향하는 것도 수단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목적으로서의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에서 도덕 국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덕 국가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중시할 뿐만 아니라 서구적 개념의 사회 계약이나 사회 협약으로 도덕이 제도화하는 것까지 포함하게 된다. 감정이나 정서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 높은 도덕이 사회 계약으로 승화되고 법질서가 최소한의 윤리를 조문화함으로써 법치주의가 사회를 높은 수준에서 보존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나 경제도 권력 정치나 무한 경쟁 또는 정의가 결여된 경제가 아닌 복지 경제를 이룸으로서 도덕 국가의 정치·경제 제도가 정착할 수 있다.

셋째, 환경 대국을 지향하는 것은 국내의 환경 보호만이 아니라 한국의 민간 단체들이 세계 환경 운동을 주도하면서 지구 보존 중심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 대국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환경 지탱 가능한 경제 개발 등과 같은 정책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인간 생활의 질과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인 것이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