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통일의 과제와 전망 - 2. 민족 통일의 조건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던 동구 제국의 변화는 1989년도에 들어와서는 가히 폭발적인 양상을 보이면서 동구 전역을 휩쓸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적인 공산당의 통치하에 있던 동독, 체코, 불가리아 등지에서도 대규모의 시위 사 태가 발생하여, 정권 교체는 물론이고 각국 공산당 내에서는 연일 긴급 각료 회의를 소집하여 이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다소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시장형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 자본주의 진영과의 교류를 모색하여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정치적 민주화를 도모하려 했다. 즉 자본주의의 시장 원리를 도입하여 생산력 증대를 통한 경제적 자유와 권익을 향상시키려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에 의한 일당 통치 제도를 완화하고 복수 경선제를 통한 다당제 도입을 시도하여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증대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회의 권한을 상대적으로 신장하여 정치적 민주화의 실현을 꾀하였다. 뿐만 아니라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까지도 요구하는 등 그야말로 이전의 동구 국가들에서 볼 수 없었던 사회 전반에 걸친 대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닫기>

우리의 북방 외교

한국의 북방 정책은 북한을 포함한 소련, 중국 및 그 밖의 모든 공산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 기반을 구축하려는 외교 정책이다.
한국의 북방 정책은 역사적으로는 1972년의 7.4 남북 공동 성명을 외교 정책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평화 통일에 관한 특별 성명(1973년 6.23)'으로 시발된다고 볼 것이다. 6.23 선언으로 시발되었다고 보여지는 북방 정책의 목표는 그때나 지금이나 평화 통일의 기반조성을 위해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고 남북한 관계를 대립과 적대로부터 평화적 공존 관계로 전환시키자는 데 두고 있다. 7.4 공동 성명에 의해 남북 대화가 시작되고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문호 개방 정책이 천명된 것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실천적 의지였다.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국제 환경이 다르고 한국의 북방 정책 추진 주체도 1970년대와 1980년대 특히 6공화국 시대는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동일시할 수 없다고 하겠지만, 평화 통일에 관한 특별 선언의 1, 2항과 5, 6항은 7.7 선언의 정신과 바탕을 같이 한다고 볼 것이다. 곧 한반도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또는 유엔 다수 회원국의 뜻이라면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한국은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한국은 유엔 가입 전이라도 한국 대표가 참석하는 유엔 총회에서의 한국 문제 회의에 북한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통일 의지를 확고히 천명했다. 특히 한국은 호혜 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한국과 이념.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한국에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벌써 그때에 공산 국가와의 접촉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이 점에 있어서 한국의 통일 정책은 기본 정신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외교 정책에 있어서 큰 맥락으로는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고 할 것이다.
1980년대의 남북한 관계는 한국은 제 5공화국의 출발과 전개로, 북한은 김정일 체제의 출발과 전개로부터 그 특징이 유래되었다. 양 체제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치열한 대립 대결 관계에 있었는데, 경제력 신장에 있어서는 북한이 참패했고 통일 정책에 있어서는 한국의 '민족 화합 민주 통일 방안(82. 1. 22)'과 북한의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80. 10. 10)'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1983년 6월 29일 당시의 이범석 외무 장관이 국방 대학원 연설에서 '북한 정책'이란 용어를 정부 고위 관리로서는 처음으로 사용하는데, 그 의미는 대 중.소 정책을 설명하는 표현이었다. 이 장관의 이 표현은 1973년 6.23 선언이 발표된 지 10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발표된 것이기 때문에 내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장관의 북방 정책은 평화 통일의 실천 의지를 후퇴시키거나 단절한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대 중.소 접근 정책을 피력한 것이기 때문에, 제안만 무성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통일 논의에 새로운 돌파 계기가 되는 듯했다.

한편 북한은 1980년 10월 제 6차 당대회를 통해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과 '10대 정책 목표'를 채택함으로써 그들의 6.23 선언(1973. 6. 23)인 '5대 강령'을 발전적으로 계승했다. 북한의 이 조치는 정치적으로는 1980년 10월 6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일 체제를 시발하면서 이 체제의 제 1호 정책으로 내세운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의 통일 정책은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으로 불변할 것이며, 이 방침은 당대의 김일성 체제가 세습적으로 물려준 불가변의 정통 계승과도 같은 것이다.
북한이 통일 정책에 있어 시종 일관 오직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만이 유일하게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여 10년을 두고 일관되게 불변인 것은 '주체 사상'의 교조와 더불어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을 두고 불변일 것이다. 어떤 황급한 사태라도 발생하지 않는 한 북한은 스스로의 손으로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안'을 버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북방 정책은 80년대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민족 화합 민주 통일의 기반 조성에 중점을 두고, 외적으로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 대 공산권 외교 특히 대 중.소 접근에 외교 정책의 정력을 집중시켰다. 내적으로는, 정치, 경제 및 사회 문화적 대북 우위 달성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통해 강대국들의 지원과 호응 및 북한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하는 데 국가적 정력을 경주해 왔다. <닫기>

1994년 미 북한 간 핵 협상

미 합중국(이하 미국으로 호칭) 대표단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하 북한으로 호칭) 대표단은 1994. 9. 23일부터 10. 21일까지 제네바에서 한반도 핵 문제의 전반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가짐. 양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994. 8. 12일 미국과 북한 간의 합의 발표문에 포함된 목표의 달성과 1993. 6. 11일 미국과 북한 간 공동 발표문상의 준수가 중요함을 재확인함. 양측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함.

Ⅰ. 양측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함

1) 미국 대통령의 1994. 10. 20일자 보장 서한에 의거하여, 미국은 2003년을 목표 시한으로 총 발전 용량 약 2,000MWe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할 책임을 짐.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경수로의 재정 조달 및 공급을 담당할 국제 컨소시엄을 미국의 주도하에 구성함. 미국은 동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경수로 사업을 위한 북한과의 주 접촉선 역할을 수행함.

미국은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본 합의문 서명 후 6개윌 내에 북한과 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함. 계약 관련 협의는 본 합의문 서명 후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 개시함.

필요한 경우 미국과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분야에 있어서의 협력을 체결함.

2) 1994. 10. 20일자 대체 에너지 제공 관련 미국 대통령의 보장 서한에 의거 미국은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동결에 따라 상실될 에너지를 첫 번째 완공시까지 보전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함.

대체 에너지는 난방과 전력 생산을 위해 중유로 공급됨.
중유의 공급은 본 합의문 서명 후 3개월 내 개시되고 양측 간 합의된 공급 일정에 따라 연간 50만톤 규모까지 공급됨.

3) 경수로 및 대체 에너지 제공에 대한 보장 서한 접수 즉시 북한은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해체함.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동결은 본 합의문 서명 후 1개월 내 완전 이행됨. 동 1개월 동안 및 전체 동결 기간 중 IAEA가 이러한 동결 상태를 감시하는 것이 허용되며, 이를 위해 북한은 IAEA에 대해 전적인 협력을 제공함.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의 해체는 경수로 사업이 완료될 때 완료됨.
미국과 북한은 5MWe 실험용 원자로에서 추출된 사용 후 연료봉을 경수로 건설 기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하고, 북한 내에서 재처리하지 않는 안전한 방법으로 동 연료가 처리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상호 협력함.

4) 본 합의 후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미국과 북한의 전문가들은 두 종류의 전문가 협의를 가짐.

한쪽의 협의에서 전문가들은 대체 에너지와 흑연감속 원자로의 경수로로의 대체와 관련된 문제를 협의함.

다른 한쪽의 협의에서 전문가들은 사용 후 연료 보관 및 궁극적 처리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협의함.

Ⅱ. 양측은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함

1) 합의 후 3개월 내 양측은 통신 및 금융 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무역 및 투자 제한을 완화시켜 나감.
2) 양측은 전문가급 협의를 통해 영사 및 여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 후에 쌍방의 수도에 연락 사무소를 개설함.
3) 미국과 북한은 상호 관심 사항에 대한 진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양국 관계를 대사급으로까지 격상시켜 나감.

Ⅲ. 양측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함

1)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함.
2)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함.
3) 본 합의문이 대화를 촉진하는 분의기를 조성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 대화에 착수함.

Ⅳ. 양측은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함

1) 북한은 핵 비확산 조약(NPT) 당사국으로 잔류하며 동 조약상의 안전 조치 협정 이행을 허용함.
2) 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 계약 체결 즉시, 동결 대상이 아닌 시설에 대하여 북한과 IAEA 간 안전 조치 협정에 따라 임시 및 일반 사찰이 재개됨. 경수로 공급 계약 체결시까지, 안전 조치의 연속성을 위해 IAEA가 요청하는 사찰은 동결 대상이 아닌 시설에서 계속됨
3) 경수로 사업의 상당 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 부품의 인도 이전에, 북한은 북한 내 모든 핵물질에 관한 최초 보고서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과 관련하여, IAEA와의 협의를 거쳐 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을 포함하여 IAEA 안전 조치 협정(INFCIRC/403)을 완전히 이행함. <닫기>

1984년 합영법

북한이 조총련을 포함한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설립한 회사. 합영 회사는 북한이 중국의 '중외 합자 경영 기업법(1979. 8 제정)'을 원용해 1984년 9월 8일 '합작 회사 운영법(합영법)'을 제정함에 따라 이에 근거해 1986년 이후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즉 1986년 2월 28일 김일성이 교시를 통해 조총련 상공인들에게 '조국의 사회주의 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촉구함에 따라 같은 해 6월 조총련에 '합영 사업 추진 위원회'가 설치된 데 이어 8월에는 합작 사업의 주선.조정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북한과 조총련이 각각 60만 달러씩을 출자한 '조선 국제 합영 총회사'가 설립됐다.

그리고 북한도 합영 사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88년 11월 정무원 내에 합영 공업부를 신설(1990. 5 제 9기 내각 구성시 폐지, 대외 경제위원회에 흡수.통합)하는 한편 1989년 4월에는 조선 국제 합영 총회사와 조총련 합영 추진 위원회가 50대 50 비율로 자본금을 20억 엔 규모의 '조선 합영 은행'을 설립, 합영 회사들의 편의를 제공해 왔다.

이에 따라 1984년 합영법 발표 이후 1992년 9월 말 현재까지의 합영 실적 약 1백 40건 중 60%가 조총련과의 합영 실적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991년 12월 현재 북한-조총련간 합영 실적이 총 계약 건수 1백 6건, 조업 건수 62건이라고 보도했다(1991. 12. 9). 조총련과 합작으로 설립된 주요 회사로는 국제 화학 합영 회사.금별 합영 회사.평양 포장재 합영 회사.평양 피복 합영 회사 등이 있다. 그리고 중국 및 소련과의 합작에 의한 합영 회사가 각각 10여 개씩이며 나머지는 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국가들과의 합작이다.

북한이 합영법을 제정한 것은 소련 및 중국으로부터의 경제 지원이 감소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외채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서방 국가들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취한 제한적인 경제 개방화 조치의 일환이었다.북한은 합영법을 통한 합영 회사의 설립이 한계에 이르자 1991년 12월 28일 중국의 경제 특구를 모방한 나진.선봉 자유 경제 무역 지대를 설정,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이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자유 경제 무역 지대를 설정한 이듬해인 1992년 10월 5일 최고 인민 회의 상설 회의 결정으로 '조선 외국인 투자법' 등을 제정했으며 1993년 1월 31일에도 이의 후속 조치로 '외국 투자 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외화 관리법', '자유 경제 무역 지대법' 등을 채택했다.

이로써 북한의 외국인 투자 관련법은 '합영법(1984. 9. 8 제정)'과 전문 22조로 구성된 '외국인 투자법(1992. 10. 5)'을 기본법으로 하여 '합영 회사 소득 세법', '외국인 기업법(1992. 10. 5)', 그리고 '외국 투자 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외화 관리법', '자유 경제 무역 지대법(1993. 1. 31)' 등 8개법이 부수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그리고 '합영법 시행 세칙(1985. 3. 20)', '합영 회사 소득 세법 시행 세칙', '외국인 소득 세법 시행 세칙(1985. 5. 17)' 등 3개의 시행 세칙도 제정되었다. 합영법 시행 세칙은 1985년 당시 제정된 10장 71조의 것을 최근 10장 104조로 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닫기>

8·3 인민 소비품 증산 운동

생필품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생산 증대 운동.
이 운동은 1984년 8월 3일 김정일이 평양서 열린 '전국 경공업 제품 전시장'을 시찰하면서 각지의 공장.기업소 내에 가내 작업반을 확대 조직, 부산물, 폐설물을 이용하여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고 이를 각 시.군.구역의 각 매점을 통해 주민들에게 공급토록 지시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니까 '8.3 인민 소비품'이란 각 공장.기업소.협동 농장에 조직된 가내 작업반에서 부산물, 폐설물을 이용해 생산한 모든 생활 필수품을 일컬으며 '8.3 인민 소비품 창조 운동'은 각 공장, 기업소, 협동 농장 내에 가내 작업반을 확대 조직해 8.3 인민 소비품 생산을 늘리려는 노력 경쟁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명 '가내 작업반 창조 운동'으로도 불린다. 북한은 이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각 공장, 기업소, 협동 농장 안에 '생필품 직장', '생필품 작업반'을 조직, 소속 근로자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산 활동 이외에 부산물, 폐설물을 이용한 생필품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은 이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1989년에 전문 4장 17조로 구성된 '8.3 인민 소비품 생산 처리에 관한 규정'을 채택(1989. 5. 27 민주 조선 보도)하는 한편 5장 26조로 된 '가내 작업반 관리 운영 규정'도 제정(1989. 8. 11 민주 조선 보도)했다. 그리고 1989년 6월 29일 '8.3 인민 소비품 생산 모범군(구역)' 칭호를 제정, 이 운동에 모범을 보인 단위를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으며, 각 도별로는 당중앙위 명의로 '감사문'을 보내고 있다. 8.3 인민 소비품의 유통 총량은 북한의 국영 상업망 유통량의 10% 내외를 차지하고 있다. <닫기>

독일 통일의 교훈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데, 다음과 같이 4가지를 들고자 한다.

첫째, 동서독의 통일은 우리에게 평화 공존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었다. 동서독의 공존 상황은 독일 분단이 '국제형' 성격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2가지 측면 즉, 분단 고착과 실리 추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즉, 동서독의 공존 상황은 헬싱키 체제에 의한 분단 고착화의 강요라는 측면과 함께 독일인 스스로가 당장 실현되지 않는 통일에 집착하기보다는 분단으로 인한 두 독일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가면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독일인의 실리 추구 측면에 의해 조성되었다. 그 결과 동서독의 평화 공존은 분단의 장기화와 고착화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존을 기초로 한 계속적인 접근을 통해 오늘의 통일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처럼 독일인들은 통일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으면서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며 민족 동질성을 찾으려 했던 반면에, 한민족은 통일의 어려운 현실은 외면한 채 당위성만 강조하며 통일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즉, 북한은 통일 우선 정책을 취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평화 우선 정책을 취함으로써 북한은 교류,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통일 방안을 분단 고착화를 위한 책동이라고 비난해 왔으며, 또한 한국은 북한의 통일 방안을 적화 통일을 위한 전략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는 통일 논의만 무성하고 실효는 하나도 없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 해결은 대립과 반목과 갈등을 해소시키는 가운데 신뢰를 회복하는 공존의 논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제도화시키고 그 바탕 위에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 가운데 궁극적인 평화 통일의 기반을 쌓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동서독 통일은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경과해야 될 것이라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평화적 통일로 가는 방법론으로 점진주의와 단계론을 수락해야 한다는 뜻이다.
독일 국민들은 통일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통일이란 쟁취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당장 통일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실현 가능한 교류부터 시작하여 결국 베를린 장벽을 허물어뜨렸고, 이제는 이 힘을 바탕으로 주변 국제적 환경을 독일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독일 통일을 달성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한민족은 맹목적으로 통일만을 외쳐 왔었다. 게다가 북한은 남한을 미국에 예속된 괴뢰로, 남한은 북한을 테러 분자로 각각 상정하면서 상대방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는다고 서로 책임을 전가하여 왔다. 즉, 이제까지의 남북한 통일 정책은 상호 신뢰 회복과 민족 화합 차원에서 공동 이익을 조성하고 민족 결합을 위한 기여와 구도를 준비하여 왔던 것이 아니라, 정치, 심리적 차원의 통일 주장이나 정권 유지적인 발상과 결부된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다. 이에 따라 2세에 대한 통일 교육은 체제 경쟁적이고 적대감과 대결 의식만을 양성하여 왔던 것이다. 이 결과, 남북한 주민들은 통일이란 불가능한 것인 줄만 알고, 심지어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란 무용한 것으로 은연중에 치부해 버린 채, 통일이란 우리의 노력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독일의 통일은 우리에게 맹목적인 통일 지상론이나 패배적 분단 고정론에서 벗어나 실존적 현실과 규범적 이상의 균형 있는 자각과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셋째, 동서독의 통일은 남북한이 이제부터라도 상대방을 잘 아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실, 동서독 통일은 그 동안 인적 물적 교류는 물론 서로 상대방측 TV까지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음으로써, 동서독인들이 공동 문화권, 공동 생활권을 향유할 수 있음으로 인하여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독일인들로 하여금 동서독 관계의 변화를 큰 충격 없이 받아들인 힘이 되었고, 더 나아가 통일의 구상과 실천의 바탕이 되었다.
반면에 남북한은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실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상대방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결과 우리는 만일 한반도가 당장 통일이 된다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모든 분야에서의 기본 정책뿐만 아니라 생활 양식과 의식 구조의 차이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남한 주민부터라도 북한 주민들의 문제는 장래 우리 민족의 문제이며, 북한 사회의 당면 문제는 장래 한반도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을 교류와 협력의 대상, 민족 문제 해결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이에 기초를 둔 대북한 정책의 수립과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넷째, 동서독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은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서독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내적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건강하게 발전시켜 왔으며, 그 바탕 위에 국민의 자유를 신장시켜 왔었고, 물질 생활을 풍요로우면서도 고르게 영위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 왔다. 이 결과, 서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체제에 자신감과 긍지를 가질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자유와 번영을 부럽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서독의 정치 지도자들은 동독에 대한 '맏형 정책'의 기조하에서 동독과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는 가운데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였다.
따라서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도 대내적으로는 민주 개혁과 균형 발전의 지속적인 추구를 통해 계층간, 노사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고 선진 민주 복지 사회를 건설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통해 고도 산업 국가로 지향하는데 있어서 큰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닫기>

주변국들의 지원 내지는 묵인

미국은 1970년대 초반부터 한반도 문제를 독일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구상을 하여 왔다. 그것을 위해 미국은 두 가지 방식을 진행시켜 왔다고 본다. 하나는 남북 대화이다. 이것은 독일에서와 같이 안정, 교류, 공존 등의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방식이다. 이 방식과 더불어 다른 하나로 교차 승인의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 이 교차 승인은 '한국 민족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당분간 동북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는 불가결한 것이다'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이렇게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고 독일식이 된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일본식의 시각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서 항상 불안하기 때문에 우선 평화와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자유 한국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다른 세 나라를 견제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의한 적화 통일을 적극 저지하게 될 뿐만 아니라 남한에 의한 북진 통일도 반대하게 된다.중립 통일이 미국에게 있어 고려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적극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유 대한이 있음으로써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전진적인 전략 배치가 가능하고 그에 의해 소련 등을 견제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립 통일이 될 때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 중립 통일이 될 때 미국은 멀리 물러서 있는 지리적 약점에 놓이게 된다. 그와 반대로 러시아나 중국은 중립 한국과 접해 있다. 따라서 중립 한국이 친러화(親露化)할 것을 미국이 염려할 것이고 이것이 미국으로 하여금 통일에 소극적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본다.
한편 일본 정부도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일본이 갖는 이익 때문이다. 안보와 경제의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일본의 이해는 한반도의 운명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철수와 통일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던 것이다.
1972년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에 일본 수상(다나카)은 "일본은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남북한의 공존은 우리가 바라는 외교 목표이다."라고 말하고 그 뒤에 그와 비슷한 후임 수상들의 발언이 있었다. 이러한 발언들은 분명히 한반도에 있어서의 통일보다는 안정과 평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어느 면에서는 일본이 통일을 바라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통일(현상의 변화)을 바라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주변에 강력한 경제력을 갖는 나라가 등장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통일된 나라가 적화하거나 사회주의화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반도의 변화가 일본에까지 비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한반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해가 큰 곳이지만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는, 남한과의 경제 교류에서 얻는 이익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 그러한 경제적인 이익이 일본의 아시아에서의 역할 증대에 따라 더욱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경제에서의 이익을 확보하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몇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한국과의 협력을 굳건히 또 증대하면서 부분적으로 북한과의 교류에서 이익을 더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장(미군의 주둔과 같은 실질적인 보장)하려 하면서 한국으로부터 경제적인 이익을 늘리는 길이다. 또 하나는 자유 통일이 되어 보다 큰 시장을 확보하는 길이다. 일본은 어떤 형태의 통일에도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지난 기간 동안에 보여 준 정책 방향을 살펴볼 때, 중국은 무거운 짐이 되고 위험성이 있는 북한에 의한 일방적 흡수 통일의 기도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평화 통일을 위한 북한의 노력을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중국이 상당 기간 한반도를 분단된 상태로 존속시키는 것이 이익이 됨을 뜻한다. 그러한 상태가 존속되는 동안에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미국, 일본, 한국 등과의 협력에 의한 현상화 계획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적화 통일을 위해서는 막대한 위험 부담을 무릅써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대가를 치를 필요성을 지금 느끼고 있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러시아로서도 적화 통일을 추진할 필요가 없고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에 있어서도 서두르지 않게 된다. 러시아는 중립 한국이 등장할 경우 그것이 친러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중립 통일에 적극성을 나타낼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닫기>

독일 통일과 소련

독일은 지정학적으로 유럽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독일에서 발생되는 사건들은 유럽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전승 4개국은 1945년 6월 5일의 "베를린 공동 성명서"와 동년 8월 2일의 포츠담 협정으로 전독일과 베를린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었고, 동서독은 1955년 이래로 NATO와 WTO라는 상호 적대적 군사 동맹체의 회원국이었으므로, 독일 통일 문제는 독일인들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서독 정부는 통일 과정에서 제 2차 세계 대전의 전승국으로서 전독일 및 베를린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보유하고 있던 미.영.불.소 4개국과 국제 정치적 이해 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1945년 이래로 독일 통일에 대한 미국 입장은 독일이 전유럽의 틀 속에서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재통일을 달성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 통일 문제가 대두되자 다수의 미국인들은 독일 통일을 지지하였다.
영국은 1952∼54년의 '독일 조약'에 근거하여, 독일 통일을 공식적으로는 지지하여 왔다. 그러나 다른 서방국들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서독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독일 통일을 저지하려 하였다. 따라서 독일 문제에 대한 준비가 아직 미흡한 상황에서 1989년 말과 1990년 초에 독일 통일 문제가 정치적 현실로 대두되자 영국은 상당히 당황하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는 유럽에서의 동서 대립 종식에 대한 희망과 냉전 구조의 붕괴에 대한 불안, 통일 독일의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운명에 대한 염려가 상호 교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 통일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공식 입장은 독일 통일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의 해결은 서방 3국 및 소련과의 대화를 통하여 충분한 동의를 얻어야 하고, 양독 정부가 사전에 합의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실질적으로 독일과의 역사적인 관계 때문에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독을 유럽 안정의 보장으로 생각하였다. 특히 프랑스 정부는 소련이 미국의 대항 세력으로서 유럽 심장부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동유럽 동맹국들을 철의 장막 속에 결속시키고 있는 한 독일의 재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를 프랑스에 바람직한 일로 여겨 왔었다.
그러나 소련은 초강대국의 일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독일 제 3제국에 의하여 야기된 전쟁으로 인하여 2,600만명이 사망하는 등 가장 큰 피해를 본 국가로서 독일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권리를 갖고 생각하고 있었다.1990년 2월 13일 오타와 외상 회의에서 '2+4 회담'이 결정되고 양독간 경제와 사회 통합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는 한편 3월 18일 동독 총선거가 다가오자, 세바르드나제 외상은 3월 14일 성명을 통하여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동독의 서독 편입과 통일 독일의 NATO 편입에 대한 서독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인 행위라고 비난하고 이를 수락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포츠담 협정에 기초된 전독일과 베를린에 대한 전승 4개국의 책임과 권리를 강조하고 전유럽의 평화 구축 및 집단 안보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7월 16일 소련의 코카서스 회담에서 통일 독일의 NATO 편입을 희망하는 콜 서독 수상의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90년 7월의 NATO 정상 회담에서 16개국 정상들은 '런던 평화 선언'을 통하여 전통적인 대소 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독.소 불가침 조약의 체결, 통일 독일의 군사력 제한에 대한 소련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둘째, 동년 7월 서방 선진 7개국 정상 회담에서는 대소 경제 원조가 약속되었다.

셋째, 이미 50억 마르크(31억 달러)의 대소 경제 원조를 약속한 콜 서독 수상은 코카서스 회담에서 고르바초프에게 대소 경제 원조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하는 한편, 통일 독일의 군사력을 1994년까지 37만명으로 감축하기로 약속하였다.

고르바초프로부터 통일 독일의 NATO 잔류를 동의받은 서독은 8월 22일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관한 제네바 회담에서 통일 독일이 ABC 무기를 포기할 것을 공식 선언하고, 9월 11일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위하여 1994년까지 총 120억 마르크(76억 달러)를 제공키로 하였다. 또한 서독은 제4차 '2+4' 회담에서 '독일에 관한 최종 합의 조약'이 체결된 다음날 소련과 양국 간 불가침 및 경제 교류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선린 동반 협력 조약'을 가조인하였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