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sex)과 윤리, 성도덕 문제 보충 자료

사회와 윤리 색인 - 3. 현대 사회의 문제와 윤리(2)
(성과 윤리, 과학과 윤리)

인간에게 있어 성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한 대답은 성은 신비롭고 또 흥미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성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표출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연 중에 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고 또 이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갈망해 왔다. 성에 대한 모든 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므로 성에 대한 지식의 갈망은 곧 자신을 알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종교적인 양심이 생기기 이전의 원시 사회에서는 인간의 성의 표현이 훨씬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본능은 억압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성에 대한 표현이 여러 가지 변형된 모습으로 금기된 것이다. 이렇게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다양한 양상으로 억압된 인간의 성을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의 성에 대한 태도나 관점, 행동들은 시대적인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맥락 속에 인정되어 학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성에 대한 태도나 행동들도 대부분 이 시대에 학습되어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들인 것이다. 이러한 성에 대한 태도나 개념, 행동 등을 한 마디로 sexuality라고 부를 수 있다.

남녀를 구분할 때 sex와 gender를 사용하는데 전자는 생물학적인 면에서 남녀를 구분할 때 쓰이는데, 이것은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구분된 선천적인 성을 의미한다. 후자는 정신적인 면에서 남녀를 구분할 때 쓰이는데 이는 개인이 태어난 이후에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환경에 의하여 학습되어진 후천적인 성을 의미한다. 어원상 섹스(sex)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섹서스(sexus)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자른다', '나눈다'는 뜻의 세코(seco, cut)라는 동사에서 파생하였다. 성이라는 글자가 지니는 원래 의미는 마음[心]과 몸[生]의 양면을 나타내고 있다. 즉, 성이란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지 단순히 성행동이나 성적인 쾌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후자의 의미로는 요즘 색(色)이라는 의미와 혼용되기도 한다. 보통 sexuality를 성욕이나 성애(性愛)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 마디로 섹슈얼리티는 인간의 성행동은 물론이고 개인이 갖는 성에 대한 태도, 환상, 꿈, 사고, 감정, 가치관, 신념, 이해심, 개인의 존재 의미 등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에 대한 태도는 보수적인 면과 진보적인 면과의 사이를 계속 반복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 성과 관련된 주제들이 공공연하게 폭발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내포한다.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 혁명을 잘못 이해하면 인간의 존재 의미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둘째, 성 혁명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성 경험이 없는 동정이나 처녀를 오히려 경멸하고 있다. 이들은 개인의 성을 서로 간의 관심이나 친교의 표현이라고 보기보다는 쾌락의 표현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성 혁명을 맞이했던 20세기를 가리켜 성 도덕이 문란한 시대라고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부담 없이 성관계를 갖고 곧 헤어진다든지,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성관계를 가져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성을 사랑과 친교가 아닌 성적으로 극치감에 도달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만 이해한다. 이처럼 인간의 사랑을 성기에 의한 표현으로만 국한시킨다면 그는 지루해하거나 강박 관념에 쌓여 마침내 파괴적인 인간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한 마디로 성 혁명을 잘못 이해하면 성적인 자유 분방함에 젖어 무책임한 행동을 하기 쉽다.
그러나 성 혁명의 진보적인 면도 간과할 수 없다. 성관계의 목적은 단순히 생식이 아니라 쾌락이라는 문화적으로 용납된 새로운 규준이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남녀가 성을 함께 즐긴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서양에서도 여성은 성을 즐길 수 없고 남성만이 자유롭게 자신의 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성 혁명으로 인해 성이란 남녀 모두의 사랑, 정감, 보살핌, 자비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여성들도 그들의 주체성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남녀가 동등하게 처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로 진보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 성이란 신비의 영역이면서도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인간의 성 행동에 대한 정상성과 비정상성에 대한 사회적인 정의나 개념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들 간의 정상적인 성 행동은 자발적인 행위이고, 서로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기쁨을 얻는 것이며, 서로의 자존심도 고양시켜 주고,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적이다. 그 반면에 수동적이거나 충동적인 상태에서 발생하는 성 행동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느낌을 주며, 기쁨보다는 죄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또한 자존심을 저하시킬 수도 있으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과연 어떤 사람이 성숙한 성을 소유하고 있는가? 성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누구일까? 진정한 성 혁명에서 목표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성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인간 관계는 진실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의 형성, 진정한 의사 교환, 사랑을 확장시켜 가는 것이다. 상호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 인간 관계는 균형 있는 친교 관계가 되며, 이럴 때 성적인 관계도 의미가 있고 서로 만족스러운 것이 된다. 즉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만 서로 성적으로 책임감이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관계를 인간의 성에 있어서 너무나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성관계(성교)는 대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행위의 일부분이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성을 평가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특징들은 성교가 아닌 다른 면에서, 즉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것처럼, 서로를 보살펴 주는 것, 유머 감각을 갖는 것, 정직한 의사 교환을 하는 것, 친구가 되어 주는 것, 상대방의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에 대해 우리가 갖는 기본적인 생각은 성은 식욕과 마찬가지로 본능이라는 것이다. 종종 인간이 지닌 성욕을 동물의 그것처럼 생각하여 동물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성욕은 그것을 충족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성욕은 성행위를 함으로써만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성에너지는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에 묻혀 있으면서 삶의 에너지로 작용한다. 한 개인이 자신의 성욕을 어떻게 표현하고 해소하는가는 그가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힌 성에 대한 태도이자 삶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성에 대한 태도는 그 사람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인간의 성욕은 식욕과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즉 인간의 성욕은 나만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필요와 욕구도 중요하다. 더구나 인간의 성은 식욕과는 달리 생리적인 면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랑과 정서적인 배려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성욕은 발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더 깊은 인간 관계와 애정을 필요로 한다. 성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전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성을 도구화하거나 수단화하는 것은 인간 자체를 수단화, 도구화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성행위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전인간적인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 나라 전통 사회에서의 성도덕 <닫기>

성모랄은 사회 규범의 한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자율에 속하는 문제이다. 즉 행위의 주체가 인간이며 인간의 도덕적 성찰에 의하여 실천되는 규범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적 성찰에 의한 주체적인 윤리 행위는 사람에 따라 그 수준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매우 낮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도덕적 자아 성찰이나 윤리 의식에 대하여는 등을 도리고 자신의 욕구 충족이나 쾌락이나 이익을 위하여 사회 규범을 파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나라 전통 사회의 성모랄은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의 호율(戶律) 혼인편과 형률(刑律) 범간(犯奸)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것이다. 호율의 혼인편, 형률의 범간편과 인명(人命)편에 규정된 법조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남녀의 혼인에는 속임수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의식에 따라 행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약혼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
2) 부모나 남편의 상중에는 혼인하지 않는다.
3) 수절하는 과부의 개가는 친권자만이 추진할 수 있다.
4) 동성간에는 혼인하지 못한다. 외척 인척 등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도 서로 혼인하지 못한다.
5) 부당하게 처를 축출해서는 안 된다.
6) 여자에게 이혼당할 만한 사유가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하지 않는 행위는 처벌한다. 7)부부의 합의 이혼은 허용한다.
8) 여자는 남편을 배반하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
9) 화간, 조간, 강간, 강간 미수는 처벌한다. 화간과 조간은 남녀의 형사 책임이 동등하다. 12세이하의 어린 여자는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
10) 처첩은 간통하도록 용납하여서는 안 된다.
11) 동종간의 간통은 가중 처벌한다.
12) 관리의 창녀집 출입을 처벌한다.
13) 남편은 처첩의 간통 행위 현장에서 남녀를 붙잡아 살해할 수 있다.
14) 남편은 간통한 처에 대하여 솔거하거나 방매하거나 임읠 처분할 수 있다.

정약용이 지은 '흠흠신서' 가운데 '의율차례(擬律差例)'에 보면 간음에 대한 형사 처벌이 나오는 데 이것을 보면 그 때 당시의 성모랄을 알 수 있다.

1) 간통한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진했다.
2) 아내의 간통에 분기하여 남편도 목매어 죽었다.
3) 딸이나 언니가 강간당함을 보고 수치심에 못이겨 자진했다.
4) 어머니의 간통 사실을 알고 아들이 투신 자살했다.
5) 여자가 남자의 실수에 의한 더듬이질을 받고 자진했다.
6) 강간 미수는 조희치사죄(調戱致死罪)에 준하여 처벌했다.
7) 간통한 여자를 처벌했다.
8) 간통한 남자를 살해한 행위는 일반 죄인 천살(擅殺)(일반 죄인 천살)보다 가볍게 처벌한다.
9) 계간을 처벌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의 정절이 절대로 침해될 수 없는 영역임을 알 수 있다. 간통이나 강간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남편과 자녀까지도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고 죽음까지도 불사함을 알 수 있다. 특히 간통한 처첩과 간부(姦婦)를 현장에서 살해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거나 감형해 준 형법 원리는 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예외 규정으로서 성모랄의 절대성을 보여준다고 해석된다.
(지교현, 한국인의 전통적인 성모랄과 바람직한 성모랄의 모색,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세미나 자료집, 1989.pp. 19-22)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명나라의 형법전 대명률(大明律)을 김지(金祗)·고사경(高士)이 이두(吏讀)로 직해하고 정도전(鄭道傳)과 당성(唐誠)이 윤색하여 출판한 법전. 목판본. 30권 4책. 전해지고 있는 판본은 홍문관본(弘文館本)·규장각본(奎章閣本) 외에 고마자와[駒澤]대학본·호사[蓬左]문고본 등이 있다. 대한제국 말까지 한국의 형법의 근간이 되었던 대명률(大明律)은 명나라의 법률이므로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거나 보충해야 할 부분도 있었고 이문(吏文)으로 되어 있는 조문을 이해하기 쉬운 이두로 번역하고 내용도 수정해야 했다. 그리하여 1395년(태조 4) 《대명률직해》를 완성하여 서적원(書籍院)에서 출판하고 1446년(세종 28) 평안감영에서 중간하였다. 우선 관제·관서명·직명 등을 조선의 명칭으로 대치하였고 속형(贖刑)에서 명률의 동전(銅錢) 대신 오승포(五升布)로 환산하여 대납할 수 있게 하였으며 한국의 지명으로 도류천사(徒流遷徙) 지방의 조항을 바꾸었다. 입적자위법(立嫡子違法)과 처첩구고부부모(妻妾毆故夫父母)의 규정도 실정에 맞게 번역하였다. 이두로 번역이 되었기 때문에 국어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의 혁명과 성(性)철학의 세 가지 유형 <닫기>

동서를 막론하고 전통적인 입장에 따르면 성적인 욕구는 가치 있는 것이긴 하나 일련의 금지 조항을 통해 통제가 필요한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갖는 도덕적인 지위는 주로 자녀를 생산한다는 생물학적인 목적에 중심을 두고 있었고 다음과 같은 계명을 통해 규제되어 왔다.

1)결혼식 하기 전에는 성행위를 삼간다. 2)피임을 하지 않고 성은 혼인 관계에 제한한다. 3)배우자 이외의 누구와도 성관계를 삼간다. 4)이성의 배우자와만 성관계를 갖는다. 5)성 상대자 즉 배우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에 있어서 성관계는 자녀를 생산하는 역할에 더하여 결혼한 배우자 간의 사랑을 돈독히 함에 있어서 도덕적 의미를 부여했다.그러나 선진 사회인 미국 등의 경우 1960년대의 성 혁명을 통해 사랑, 결혼, 자녀 출산과 관련된 성관계만을 가지라는 요구 사항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통적인 금기 사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성 혁명을 통해 혼외의 성관계, 피임, 1인 이상과의 성관계, 동성애, 사랑과 무관한 성관계 등이 용납되고 주장되기에 이른다. 자유 및 타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성 혁명을 주장하는 자들은 합의 당사자 간이라면 실제로 모든 종류의 성적 표현을 용납하고자 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문제에 대해 철학자들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주제들은 성과 사랑과의 관계, 결혼과 혼외 정사, 동성애의 문제, 도색물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는데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적, 급진주의적 입장이 그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성 그 자체를 위한 성은 부도덕할뿐만 아니라 나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성을 사랑, 결혼, 생식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며 이런 경우에만 도덕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관계가 사회의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될 모험, 신선함, 다양성, 실험 등의 가치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럽게 회피함으로써 그들의 철학이 우리가 성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옹호한다.

자유주의적 입장은 성은 일차적으로 쾌락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약도 없이 만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자유주의자들은 성이란 서로 합의하는 성인 당사자들 간에 이루어져야 하고, 혹은 적어도 그들이 행하는 일이 자신에게 해롭지 않음을 알 정도로 충분히 성숙한 자들 간에 이루어져야 하며, 성은 타인에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되고, 또한 그것을 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규범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한, 자유주의자들에 있어서 혼전의 성, 혼외의 성, 동성애, 특이한 성기술에 의한 실험 등이 용납될 수 있다. 사랑, 결혼, 생식과 관련되지 않은 성을 타락한 것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과는 달리 자유주의자들은 어린이에게 음란 행위를 하든가,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든가, 타인에게 심리적, 생리적 고통을 유발할 경우에만 타락한 성이라는 표현을 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타인을 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든가 존엄성을 유린하는 성행위일 경우에만 타락된 것으로 비난한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들은 연인 간이나 부부간의 판에 박은 듯 지루한 성관계보다 낯선이와의 성관계는 모험과 환희의 감정, 성적 쾌락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을 위해 사랑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성의 목표가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새로운 성의 기술이나 성의 파트너와 실험을 함에 있어서 어떤 제한이나 제약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성행위가 기이하면 할수록 성적 쾌락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쾌락의 증대는 한편에서는 미지의 것을 탐색하는 도전에서 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규범을 어긴다는 모험에서 결과한다고 한다. 편협한 사회적 조건화만 극복할 수 있다면 어떤 행위도 추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으며 어떤 대상이나 어떤 유형의 파트너도 쾌락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변이 타당한 경우, 노출증, 가학 및 피가학증, 관음증, 수간이나 시간 등도 모두 용납될 수 있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급진주의자들은 쾌락을 위해서라면 어떤 제약도 무시할 용의가 있는 까닭에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을 상해하는 성행위까지도 용납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들은 소아성애, 강간까지도 허용하는 셈이다.
(황경식, 성 윤리, 성 철학, 성 교육, 철학 문화 연구소, 철학과 현실, 1994, 여름호, pp. 79-84)

도색물(桃色物, pornograph)의 비도덕성 <닫기>

"전통적으로 도색물은 부도덕하다고 비난되었다. 그것을 굴욕과 성욕에 대해 '음란한 관심' 또는 '병적인 관심'을 유발시키도록 고안된 방법으로 만들어진 적나라한 성적 자료이며 게다가 그것은 어떠한 보완적 가치도 아니며 '일상적인 순결관'을 파괴하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1954년 미국 법조항 Model Penal Code에 정의된 '외설'에서 논의된 것인데, 이 법은 독자나 시청자에게 성적 자극이나 쾌락을 유도할 목적으로 신체의 특정부분과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제시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은 성을 출산에 관계된 것만으로 그리고 합법적 결혼 외의 모든 성행위를 규제하는 하나의 성 윤리이다. 1960년에 와서 이 법령은 성혁명론자의 일차적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후 많은 부분에서 개방된 성행위가 인정받게 되었고 그 결과 성의 문란이 초래되었다.
성에서의 혁명이 낳은 이로움이 있다면 그것 중의 하나는 성관습의 문제와 도덕성 문제 간의 식별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것일 것이다. 부도덕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해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그러한 상해는 신체적이거나 심리적인 것이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거짓말을 하고 권리를 침해하고 착취하고 경멸하고 욕하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이다. 몇몇 성행위는 도덕적으로 제지될 만하지만 그것은 성적 특성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간통은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자와 성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성적, 정서적 신뢰를 깨뜨렸기 때문에 부도덕하다. 가학적이며 음란한 모든 강제에 의한 성행위는 상대를 상해했거나 침해했기 때문에 부도덕하다. 도색물은 사람에게 해를 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부도덕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색물이란 무엇인가? pornography라는 말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정의되기를 매춘부와 고객의 삶의 묘사'라고 되어 있다. 이는 porno(harlot, 매춘부) + grapgh(write, 쓰다)가 합성된 말로, 그러므로 '문학이나 예술에서의 외설이나 정숙치 못한 주제를 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도색물은 성행위의 시각적 청각적 노출로서 정의될 수 있다. 미국의 '도색과 외설에 관한 위원회'의 말을 따르면, 그러한 성행위는 "여성의 인권과 역할을 저질스럽고 추잡하게 묘사하는 뜨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고 성적으로 조작되고 이용된 단순한 성적 대상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도색서적, 잡지,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수동적이며 노예처럼 매어진 것으로 표현된다. 여자 배우자의 역할은 남자의 성유희물에 국한되어 있다. 여자의 성적 쾌락까지도 남자의 쾌락에 달려 있고 남자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 도색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추잡하고 타락된 성 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암시적이라도 부도덕한 성행위를 받아들이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즉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작품의 한 인물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성행위인 것이다. 그 때의 도색물은 작품 인물을 난잡하고 타락된 성행위로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그것을 탐닉케하는 언어나 그림 등을 통한 자료이다.많은 연구의 결과를 보면, 폭력적 표현의 노출은 실제로 폭력을 행하는 것과 상호 연관이 있으며, 도색물의 범람은 여자에 대한 성적 학대와 폭력을 저지르는 것과 상호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중 매체에서의 도색 수용은 문화적 침식을 의미한다. 도색물 자체만큼이나 여자에 대한 타락되고 왜곡된 이미지의 사회적 허용도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자에 대해서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 주려고 하지 않으며 그런 식의 대우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Longino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점에서 도색물이 여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도색 특히 폭력적 도색물은 여자에 대한 폭력을 자행하도록 함축되어 있다. 둘째, 도색물은 여자에 대한 깊고도 사악한 거짓을 유포시키는 매체이다. 그것은 여자에 대한 중상 모략이며 명예 훼손이다. 셋째,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본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의 만연으로 인해 남성 중심의 성차별 태도가 유지되며 여자에 대한 착취나 억압이 강화되고 있다.

도색에 대한 사회적인 관용은 이러한 형태의 해를 강화시킨다. 그러므로 거짓을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여자가 열등한 종속된 피조물이라는 남자 중심의 믿음을 지지한다. 그러므로써 여자에 대한 심리적 신체적 폭력에 방임적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영향을 준다. 도색물의 제작과 유포는 사회적 도덕적 죄악이다. 오늘날의 도색물 제작량의 증가와 여자의 지위를 격하시키는 도색물의 통신 매체로의 침식을 감안한다면 그것에 대한 통제는 필수적이다. (진교훈, 한국 사회의 성도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역할과 기대,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학술 발표 세미나 자료집, 한국 사회의 성 문제와 윤리적 과제, 1989, 요약 발췌)

현대문명과 과학기술 <닫기>

슈펭글러는 다음과 같이 논한 바 있다. "기술적인 것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계, 기술에서 출발해서도 안 되고 더구나 기계 제작이나 도구 제작이 기술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따위의 사람을 현혹하는 사상에서 출발해서도 안 된다‥‥‥‥ 식물과 달리 동물의 생활 유형에는 자유로운 공간 이동성, 자기 자신 이외의 전자연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유나 독립성 그리고 동시에 자연을 향해서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의 생존에 어떤 종류의 의미나 내용 혹은 우월성을 부여하는 등등의 필연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기술적인 것의 의미는 바로 이와 같은 혼을 통해서만 해명될 수 있다 ‥‥‥‥ 기술은 모든 생명 활동의 전략이다. 기술은 생명 활동 그 자체와 같은 의미에서 투쟁 방식의 내용적 형식인 것이다.

가세트(Gasset J.Q)는 기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기술의 발전 단계를 대체로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선사 시대의 우연의 기술로서 깊은 생각과 체계적인 연구의 결과로 어떤 기술이 발명되고 그 기술에 의해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활해 나가다가 우연히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어떤 현상을 목격하게 되고 그 현상이 일상 생활에 편리하게 작용함으로써 그 기술이 인간 생활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장인의 기술 시대이다. 우연의 기술 시대보다 기술의 체계가 어느 정도 잡힌 상태이다. 이 시기에는 일단 기술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각 기술에 따르는 직업이 사회에서 보장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장이'들이 직업인으로서 인정을 받고 저마다 지닌 기술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람들은 이와 같이 장이들을 특수한 기능을 지닌 기능인으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기술을 통해서 제조되는 일정한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기술을 여느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천부적인 기량과 다르다고 여겼으나 그 자체를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기술을 기능인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수가 많았다. 장인의 기술은 그 장인에게 주어진 하나의 속성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성에 속해 있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장인의 기술과 예술인의 예능은 같은 범주에 있었다. 그리스어의 techne라는 말은 기능과 예능에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셋째, 기능인의 기술 시대이다. 이른바 17세기의 과학 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학 기술 시대가 이에 속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과학 기술 문명의 특징은 바로 과학과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이 합쳐져서 하나의 개념처럼 굳어버린 과학 기술이라는 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 문명은 계획자와 노동자가 완전히 분리된 멈포드(Mumford. L)가 말한, 5천년 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메가머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세계관적 토대로서의 현대성의 이념은 이성적인 인간, 인간 인식에 의해 표상될 수 있는 실재, 실재를 구성하는 계량화될 수 있는 본질적 법칙, 그리고 그 법칙의 합목적적 진보성에 대한 신념을 그 토대로 하는데, 이는 현대 기술 문명의 철학적 근거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는 결정론적인 인과율에 바탕을 둔 실증주의와 다를 바 없다.
하버마스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실증주의적 공동 의식은 지배와 이데올로기가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의 조건하에 성립되어 있으므로 반성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일상 언어적 상호 행위의 연관 체계를 폐기시켜 버린다. 기술 관료주의적 의식을 통해 합법화되는 국민 대중의 탈정치화는 순응 행위와 마찬가지로 목적 합리적 행위의 범주에 드는 자기 대상화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대 과학 기술은 인간을 현실적인 것에 언제 어디서나 다소 눈에 띌 정도로 부품화하는 그러한 탈은폐의 길로 보낸다. 오늘날과 같은 기술 문명 시대에는 비은폐된 것이 대상으로서도 아니고 오직 부품으로서만 인간의 관심거리가 되고 인간은 대상이 없는 한낱 부품의 주문자로서 존재하자마자 낭떠러지 끝에 서게 되어 그 곳에서는 자신마저도 그저 한낱 부품으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윤을 극대화로 하는 시장 경제 체제는 글로벌하게 세계화되어 유기적 구성 요소인 생물들과 무기적 구성 요소인 토양, 대기, 수질 등으로 통합 구성된 지구 생태계의 물질 에너지 순환 과정을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장 경제 시스템과 과학 기술에 의한 공업 문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루 속히 이에 대응할 새로운 경제 체제와 과학 기술을 계발해 내야 하겠다. 그러나 그 전에 이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경제 체제가 인간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과학 기술이나 경제 시스템도 본래는 인간의 행복 증진과 인류 평화를 목표로 한다. 문제는 주지하는 바대로 인간의 행복과 유토피아가 물질에 있으며 그 물질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이 커진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의 전도에 있다. 근세 이후 과학 기술은 그러한 정치적, 경제적 가치관에 편승하여 자연을 개발하고 인간에게 유익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열중하여 왔다. 근세의 합리주의 사상과 과학 기술이 전제 군주의 정치적 압제,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민주적인 시민 사회를 형성하도록 하고 오늘의 풍요한 경제 생활을 영위하게 한 위대한 공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학 기술과 경제적 풍요는 인간의 본래적인 가치 즉 인간의 완성을 돕는 수단으로서, 그리고 자연의 생태계를 보존하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조화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했다. 물론 과학 기술이나 시장 경제 시스템은 그 자체가 그러한 전도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과대하게 확대시켜 오늘의 환경 위기를 가져오게 한 잠재적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 그 자체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 만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지구 환경을 살리고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그 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새로운 과학 기술의 문제는 기존의 과학 체계와 물질 문명의 체계를 아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 체계의 물질 에너지 내지 정보의 순환 과정을 서로 상보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윤리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